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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프(BANF)와 실리콘랩스, ‘블랙박스’를 깨다
실리콘랩스는 한국의 지능형 타이어 시스템 기업인 반프(BANF)와 함께 기존의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TPMS)의 한계를 극복하는 획기적인 타이어 모니터링 기술을 발표했다
패러데이 케이지를 뚫은 실리콘랩스 BG22와 반프 iSensor의 무선 전력 융합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브뤼셀 남쪽의 워털루 평원. 나폴레옹의 운명을 가른 이 역사적 전장에서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 중 하나는 ‘진흙’이었다. 전날 내린 폭우로 대지가 거대한 늪으로 변하자, 프랑스군의 대포와 마차 바퀴는 진흙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댔다. 지면과 맞닿은 바퀴의 마찰력 변화를 실시간으로 읽고 예측할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결국 포병 전력을 제때 전개하지 못해 무릎을 꿇었다.
이처럼 문명사에서 바퀴는 이동의 혁명을 이끈 주역이었지만, 동시에 지면과 맞닿은 상태를 온전히 고립된 채 숨겨둔 ‘블랙박스’이기도 했다. 마차 시대부터 현대의 고성능 내연기관차, 그리고 최첨단 전기차(EV)에 이르기까지 차체는 끊임없이 디지털화되었으나, 정작 노면과 직접 비벼대며 차량의 전단력을 지탱하는 타이어 내부만큼은 철저히 아날로그의 암흑지대로 남아있었다. 기존의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TPMS)은 사후 약방문식으로 “바람이 빠졌다”는 경고만 보낼 뿐, 바퀴가 지금 미끄러지는지, 너트가 풀렸는지, 노면의 마찰 계수가 얼만큼 떨어졌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최후의 아날로그 영역에 디지털의 빛을 비춘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의 지능형 타이어 시스템 혁신 기업 반프(BANF)와 글로벌 저전력 무선 연결 분야의 거인 실리콘랩스(Silicon Labs)가 손을 잡고, 타이어를 실시간 고해상도 데이터 플랫폼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패러데이 케이지를 뚫은 실리콘과 고무의 서사시
자동차 정비공학의 관점에서 타이어 내부는 전파 통신의 ‘지옥’과 같다. 타이어의 형상을 유지하고 내구성을 확보하기 위해 겹겹이 두른 강철 벨트(Steel Belt)와 두꺼운 특수 고무층은 전자기파를 차단하는 차폐막, 즉 ‘패러데이 케이지(Faraday cage)’ 효과를 일으킨다. 게다가 주행 중 발생하는 수천 RPM의 원심력, 노면 충격으로 인한 기계적 스트레스, 섭씨 100도를 넘나드는 고온 환경은 반도체 소자가 생존하기 어려운 극한의 전장이다.
반프는 이 물리적 한계를 실리콘랩스의 초저전력 블루투스 저에너지(Bluetooth® LE) SoC인 ‘BG22’를 통해 정면 돌파했다. BG22는 가혹한 무선 차폐 환경 속에서도 끊김 없는 강건한 RF(무선주파수) 성능을 뿜어낸다.
타이어 내부에 장착된 반프의 iSensor는 이 칩셋을 기반으로 초당 수천 번의 샘플링을 감행하며 3축 가속도, 압력, 온도, 그리고 타이어의 수명과 직결되는 트레드 깊이(Tread Depth)를 정밀 측정한다.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반프의 아키텍처 설계 능력이다. 수천 헤르츠(Hz)로 쏟아지는 거대한 테라바이트급 원시 데이터를 차량 중앙 제어 장치로 무작정 쏘아 올리면 차량 네트워크(CAN/차량용 이더넷)는 대역폭 과부하로 마비된다. iSensor는 타이어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1차 필터링하여 ‘휠 너트 풀림’, ‘슬립 현상’, ‘노면 마찰력 급감’ 같은 치명적인 핵심 시그널만 축약해 차량에 전송한다. 통신 부하를 줄이면서 응답 속도를 극적으로 단축시키는 엣지 컴퓨팅의 정수다.
영구기관을 향한 도전: 배터리를 지우고 무선 전력을 심다
기계공학 엔지니어들을 괴롭혀온 또 다른 유령은 ‘전원 공급’이었다. 이 가혹한 회전체 내부에 화학적 배터리를 넣는 순간, 원심력에 의한 파손 위험은 물론 겨울철 성능 저하와 주기적 교체라는 치명적인 결함에 직면하게 된다. 유선 연결은 애초에 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반프는 이 문제를 무선 에너지 전송 기술로 영리하게 해결했다. 자동차의 흙받이(머드가드)나 펜더 내측에 장착되는 ‘스마트 프로파일러(Smart Profiler)’가 그 열쇠다. 이 장치는 자기 공명 방식을 통해 회전하는 타이어 내부의 iSensor로 지속적인 전력을 방사한다.
배터리가 필요 없는 영구적 아키텍처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덕분에 센서는 전력 고갈의 공포에서 벗어나 중단 없는 고빈도 데이터 수집을 아낌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자율주행 차량의 핵심 화두인 ‘보안’에도 만전을 기했다. 실리콘랩스의 하드웨어 보안 기술인 시큐어 볼트(Secure Vault™)를 내부 칩셋에 각인해, 타이어 데이터가 외부 해킹 세력에 의해 위조되거나 스푸핑(Spoofing, 데이터 위장)되는 리스크를 원천 차단했다. 타이어 정보 조작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자율주행 트럭의 섀시 제어 오작동을 막아주는 든든한 방벽이다.
SDV와 군집 주행 인프라의 ‘라스트 마일’을 완성하다
현대 모빌리티 산업은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와 로보틱스로의 대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인간 운전자는 시트와 스티어링 휠을 타고 올라오는 미세한 진동, 즉 ‘손끝과 엉덩이의 감각’으로 노면이 미끄러운지 타이어에 이상이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아챈다. 하지만 운전석에 사람이 없는 AMR(자율이동로봇), 무인 자율주행 트럭, 혹은 고속도로를 대형을 유지하며 달리는 군집 주행(Platooning) 차량들은 그 직감이 없다.
반프와 실리콘랩스가 구현한 실시간 타이어 데이터는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새로운 감각 기관’이 된다. 노면 마찰 수치가 떨어지는 순간, 섀시 제어 시스템(ECS)과 차량 자세 제어 장치(VDC)가 인지하기 전에 타이어가 먼저 알고 브레이크 압력과 조향각을 선제적으로 보정한다. 이는 무인 모빌리티 생태계의 안전 수준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혁신이다.
[Editor’s Note] 마찰력을 지배하는 자, 모빌리티의 미래를 지배한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라 했다. 거대하고 무거운 AI와 자율주행이라는 도전 앞에서, 모빌리티 업계는 센서를 늘리고 연산 장치를 키우는 방식으로 응전해 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언제나 지면과 맞닿은 4개의 고무 바퀴, 그 좁은 접지면(Patch)에 있었다.
반프의 유성한 대표가 언급했듯, 그간 버려졌던 테라바이트급 타이어 데이터를 실시간 인텔리전스로 전환한 이번 솔루션은 단순한 부품 개발이 아니다. 이동체의 가치 모델을 예지 정비(PdM), 경로 최적화, 보험 연계 서비스(UBI)로 확장하는 거대한 거번넌스의 시작이다.
실리콘 플래폼의 대가 실리콘랩스의 기술 위에 반프가 도메인 특화 혁신을 얹어 완성한 이 지능형 타이어는, 모빌리티가 디지털로 완전히 진화하기 위해 넘어야 했던 최후의 아날로그 장벽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바퀴의 상태를 완벽히 장악한 자율주행차가 펼쳐 보일 미래의 도로가 사뭇 기대되는 이유다.
모빌리티(Mobility)의 미래 비즈니스 전략을 찾다
- 모빌리티타임즈 (mobilitytimes.net)








